화엄사 가는 길


힘겨운 산행을 피하고 안 가본 길을 가기 위해, 구례 화엄사 가는 아스팔트 길 옆으로 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계곡길을 찾아봤다. 지난 날 내린 비가 멈춘 뒤라 물소리는 경쾌했다. 
구례에서 지리산으로 향해 올라가는 길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년) 이 만들었다.  경덕왕은 불교를 적극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로 활용하여 삼국 통일 후 많은 사찰을 만들었다. 그가 지은 사찰로 유명한 절은 경주의 황룡사가 있다. 또한 경덕왕은 아버지인 성덕왕을 기리며 종을 만들었는데,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 종이 나중에 에밀레 종으로 유명해졌다. 
한 가지 이 시기에 중요한 일이 또 있다. 이때 경덕왕이 중국(당시 "당")을 본따 고구려 백제의 지명들을 포함해 모두 한자식으로 바꾼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지명이 모두 두 자의 한문으로 된 것은 이때부터다. 뜻이나 음을 빌려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권력을 통일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중국의 문자를 빌려쓰던 당시로서는 불가피했겠지 싶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이제 더 이상 계곡을 따라 올라가지 못한다. 위험하기도 하다. 이 계곡이 있고 나서부터 자리를 차지했을 바위 위 이끼들이 미끄럽다. 아마 옛 사람들도 이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난 아스팔트가 놓인 자리가 그 사람들의 길이었으리라. 
 


Post a Comment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