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블라스 거리 옆으로 나 있는 골목을 비스듬히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작은 광장이 하나 나오는데, 그 가운데 산타마리아델피 교회가 있다. 이곳은 내전 기간 분노한 민중들이 착취자이자 파시스트를 옹호했던 교회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사진 구글이미지캡쳐 |
흔히 종교가 비정치적이거나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가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정반대의 경우를 종종 본다. 종교인들이 매우 보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종교가 처한 현실 때문이다. 현실의 변화가 종교와 그 종교를 실천하는 종교인을 역사의 무대에 올리고, 여기서 어떤 이들은 그 무대에서 현실의 변화에 보수적일 수 있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한 가지 현실에, 서로 다른 진영으로 갈리는 것도 그런 경우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기존의 낡은 체제를 부수고 새로운 체제로,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에 보수적 종교는 반동적일 수 있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에서 중세 가톨릭은 프랑스 민중의 적이었다. 구체제의 일부였던 프랑스 가톨릭은 민중들의 삶을 착취하고, 지배했다.
이런 일이 스페인 혁명에서도 일어났다. 스페인의 가톨릭은 식민지 지배에 동참하며, 그들의 눈에 “미개인”, “야만인”으로 보인 원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겠다고 나선 세력이었다. 스페인 왕정과 함께 했던 이들, 스페인 가톨릭은 스페인 왕정의 운명과 같이 하며, 왕정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따라서 스페인 왕정의 생명이 질긴만큼 이들의 보수적 본성도 질기게 남아 왕정이 민중을 수탈하는 것정도로 자신도 그 왕정을 방어하며 민중을 기만했던 것이다. 따라서, 공화정을 지지하고,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들, 특히 노동자와 급진 정치 세력에 대한 증오는, 사탄에 대한 증오만큼이나 깊었다.
물론 이런 모든 사태는 스페인이 갈수록 식민지 기득권과 세계적 패권의 약화, 무엇보다 스페인 내 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변화에 연결되어 있던 것이지만, 이 같은 변화가 거역할 수 없는 만큼 옛 체제에 대한 향수도 커지면 동시에 새로움에 대한 증오도 비례해 커가는 배경과 닿아있다.
그리고 마침내, 정치적 격변에 동반해 민중들이 봉기하고, 변화를 향한 열망이 낳은 급진화가 혁명이라는 국면을 열자, 교회에서 설교하고 우매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는 일만 하던 성직자들이 총을 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총부리는 민중을 향했다. 이들은 열성적으로 프랑코 파시즘의 이념에 동감하면서, 혁명을 외치는 민중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분노한 스페인 민중은, 교회를 부수고 불사르며, 교회 물건을 약탈했다.
산타마리아델피 교회. 1936년 6월 20일, 내전이 시작되기 직전 분노한 바르셀로나 노동자와 민중들이 교회로 들어와 성상을 파괴하고 마침내 교회를 태워버렸다. 화재로 지붕이 내려앉았고 창문들도 모두 깨졌다. 복구가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검게 그을린 흔적이 건물 여기저기에 남아 있어 내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김승현. |
교회 정면에서 뒤쪽으로 돌아가면 벽면에 '무명 민병대의 광장'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 표시는 내전 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민병대들이 교회 앞에서 집회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김승현. |
주소: Plaça del Pi, 7, 08002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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