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1943년 모습. 사진. wikipedia |
이 때문에 평생 스탈린주의자들의 악의적인 비판을 받아야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하건, 오웰이 쓴 ≪카탈루냐 찬가≫는 스페인 혁명의 현장을 찾아가는 썩 괜찮은 안내서다.
오웰은 인도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인도 식민지 정부에서 일했다. 열세 살 때 영국으로 돌아와 이튼을 다녔지만, 대학은 들어가지 않고 인도 제국 경찰에 지원해 이후 버마에서 일했다. 그는 제국주의 경찰직을 끔찍이 싫어해 1927년 가을, 일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했다. 스페인에 갈 때까지 몇 편의 작품이 인정을 받아, 조금씩 유명세를 얻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었지만 아직 그가 사회주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쓴 ≪위겐 부두를 향하여≫는 당시의 그의 정치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바르셀로나로 갈 때는 영국 독립노동당 정치를 가지고 있었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것은 대공황 이후 스페인이 겪은 정치, 경제적 혼돈의 절정에서 터진 것이었다. 왕당파, 팔랑헤(파시스트) 당, 지역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와 장교들이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가톨릭적 가치로 하나가 된, 옛 제국 스페인과 같은 영광의 스페인 건설이었다. 이들의 적은 공화국도 공화국이지만,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사회를 근본부터 바꾸려는 조직 노동 계급과 농민(더 정확히 말하면, 농업노동자) 운동, 즉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였다. 이에 맞서, 우왕좌왕하는 제2공화국 정부를 앞질러, 노동자, 민중들이 봉기하여 곧장 주요 도시와 지역을 접수해 집산화하고,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트로츠키는, 이를 보고 스페인혁명의 정치적, 문화적 수준이 이미 1917년 2월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내전 발발로 봉기에 나선 노동자들은 공공 기관, 교통, 자본가들의 소유를 집산화하고 직접 통제했다. 위 사진은 1936년 바르셀로나의 모습으로, 무정부주의 경향의 노조 연맹 CNT가 트램을 집산화했음을 표시하며(차량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칠해져 있다) 운행하고 있다. 사진 구글 검색 |
스페인 혁명의 전망을 두고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배적인 입장은 혁명 과정을 잠시 중단해, 파시트에 맞선 전쟁에서 승리하고 공화국의 국제적 고립을 피한 다음 ,전쟁에서 이기면 다시 혁명을 전진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인민전선(자본가 계급, 노동자 계급이 협력하는 것)으로 수립한 공화국 정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고 카발레로와 사회당 좌파, 무정부주의 경향을 가진 CNT, FAI가 점차 이 입장으로 기울었다. 이들은 모두 한 때 공화국 정부 내각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둘째 입장은 파시스트에 맞선 전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 정부를 전복하고 착취 체제를 끝장내,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소수지만, 소련 공산당이나 유럽 사민주의를 닮은 사회당으로 부터 독립적이려던 혁명정당 POUM(통일 마르크스주의 노동자당)과 또 다른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였다.
스탈린주의 스페인공산당도 아니고 유럽식 사민당인 사회당 좌파도 아닌 독립적인 혁명 정당 건설을 주장했던 POUM(통합 마르크스주의 노동자당)의 내전 중 행진. POUM은 스탈린주의자들에게 파시스트와 손잡은 배신자라는 황당한 비난을 받고, 강제 해산 되었고 일부는 살해당하기도 했다. 사진 구글 검색 |
마지막 입장은 혁명 과정을 완전히 뒤집고, 모든 것을 자본가 정부에게 넘기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중간 계급, 그리고 스페인 공산당의 입장이었다. 스페인 공산당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운동에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의 대외 관계 때문에라도 외국 혁명운동을 자제시키거나 파괴하는 데 그 나라 공산당을 활용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파시즘에 맞서 노동계급이 지배계급과 인민전선을 형성하고, 정부 내각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내전 중 스페인 공산당. 레닌과 스탈린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바쿠닌의 무정부주의가 강했던 스페인에 공산주의가 성장했다. 사진 getty image |
오웰은 그 자신의 정치적 취약함 때문에 POUM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파시스트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단련된 전술과 무기를 가진 스페인 공산당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카탈루냐 찬가≫에서 읽을 수 있듯이, 사태는 완전히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발전했다.
오웰이 바르셀로나를 향했던 것은 내전이 발발한 그 해 크리스마스 전이었다. 오웰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는 곳곳이 이미 사회주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전선에 갔을 때는 거의 아무 전투도 일어나지 않아, 무기 공급이나 전투의 끔찍함 등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추위, 배고픔, 담배 같은 것이 더 문제였다. 그러나 전투가 다른 전선에서 더 치열했기 때문이었을 뿐, 전쟁은 갈수록 혁명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가 다시 바르셀로나에 돌아왔을 때인 1937년 5월 경의 바르셀로나에는, 그가 처음 봤던 혁명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없었고, 거리는 긴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인민전선 정부는 혁명의 급진화를 두려워해 "중립적"인 경찰력을 동원해 혁명 전으로 사태를 되돌리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7년 5월 9일의 람블라스 거리. 조지 오웰이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묵었던 곳도 여기였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카탈루냐 광장으로 이어지는 이 길목은 혁명 정치 세력의 본부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사진 구글검색 |
점차 파시스트의 공세는 독일, 이탈리아와의 협력으로 강화되고, 주변 자본주의국은 불간섭 정책을 하면서 스페인 노동자와 민중은 고립되어 갔다. 반면 무기 수입 때문에라도 인민전선 정부는 점차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동시에 전쟁과 혁명을 분리해 전쟁에 우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 다른 좌파들은 인민전선에 끌려 다녔다. 그리고 공산당은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POUM을 억압하기 위해 프랑코와 손잡은 배신자라는, 아무도 믿지 않을 황당한 비난을 퍼부었고, 급기야 POUM을 해산하고 당원을 잡아가두고 죽도록 내버려두기까지 했다. 오웰이 책에도 썼듯이 그도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이 시기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다른 외국인 친구들처럼 말이다.
오웰은 스페인에서 파시스트에 맞선 노동자들의 혁명적 분출이 일구어낸 사회주의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전망이 어떻게 스탈린주의 공산당 그리고 인민전선에 의해 파괴되는가도 보았다. 이후 오웰은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민전선의 핵심 문제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함께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지만,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노동자 계급은 사회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공장과 토지를 장악하고, 지역 위원회, 노동자 민병대 등등으로 노동자 정부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오웰은, POUM이 옳았음을 인정하면서도 POUM이 단지 공화국 정부를 허울뿐인 통제를 하겠다는 실수를 했다고 말하며, 인민전선은 도둑놈과 도둑 맞은 사람 사이의 비신성 동맹을 위한 계급 협조를 정중하게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 가기 전, 그의 ≪카탈루냐 찬가≫를 먼저 읽고 가는 것이 좋겠다. 아래에 책에서 나오는 장소를 직접 가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건물 사진과 주소를 함께 남긴다.
람블라스 거리의 리볼리 호텔. 내전 중 POUM의 본부가 이 건물에 있었다. 건물 외벽을 잘 살펴보면, 당시의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총은 길 건너편 폴리리마 극장 옥상에서 경찰들이 쏘았다. 사진 구글지도 캡쳐 La Rambla, 138, 08002 Barcelona, 스페인 |
리볼리 호텔 근처에 콘티넨탈 호텔이 있다. 오웰이 바르셀로나에 머물던 동안 묵었던 호텔이다. 이 호텔 주인은 내전 중에도 호텔을 운영했던 사람의 손자다. 사진 구글지도 캡쳐 La Rambla, 128, 08002 Barcelona, 스페인 |
리볼리호텔 건너편에 있는 폴리라마 극장. 사진 구글지도 캡쳐 주소 La Rambla, 115, 08002 Barcelona, 스페인 |
내전 중 공산당 본부가 있던 건물. 지금은 애플 대리점이다. Plaça de Catalunya, 11, 08002 Barcelona, 스페인 |
* 처음에 무력 충돌이 전화교환국과 람블라스 거리에서 있었는데 이를 공산당과의 충돌이라고 했던 것을 경찰이라고 바꿨다.
요즘 카탈루냐 찬가 책을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답글삭제통일사회주의 통일 노동자연맹, 통일사회주의연맹, 공산주의, 왕정정치, 파시스트, 볼셰비키정당.. 참 많은 이념과 정치세력들이 등장해서 이해하느라 한참 애먹고 있었는데, 보다 명확하게 요약해서 이해하기 쉽게 글을 작성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그런것인지, 스페인 내전은 의외로 소개되지 않는 글입니다. 대부분의 세계사는 1차 세계대전 - 대공황 -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기 나름이죠. 그 중간에 (물론 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과거와 근대와 현대의 이념이 한데 뒤엉켜 섞인 전쟁인 스페인 내전이 소개되지 않고, 이제서야 그 진면목을 책을 통해 바라볼 수 있게 되서 한편으로는 기쁘네요.
종종 들리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카탈루냐 찬가를 이해하는데에 참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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