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 위대한 프랑스인을 위한 조국의 헌사

파리의 판테온. 사진 김승현
건물 앞에 서면, 여러모로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닮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름도 건물 정면도. 하지만 입구에 써진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위인들에 대한 조국의 감사)가 보여주듯, 판테온은 "위대한 프랑스인"의 성전이다. 여기서 누가 위대한 프랑스인이냐 하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정하는 것일테고, 따라서 그 자체에서 판테온은 민족주의적 지향을 안고 있다. 이것은 판테온의 근대 역사를 보면 분명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인류 역사에 만만치 않은 공헌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마도 프랑스 혁명이 가지는 전 세계적 의미때문일 것이다. 


판테온에 안장된 대표적 인물을 이야기하면, 우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루소와 볼테르다.  그리고 앞으로 더 가면 오른쪽에 보나파르트의 명으로 안치된 41명의 제국 시대에 고위 관직을 한 사람들이 있다. 나폴레옹 전쟁의 장군들이 다수지만, 나폴레옹 민법전을 실제 작성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우파에게 암살당한, 프랑스 사회당의 창립자인 장 조레스가 있으며 조금 더 가면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의 석관이 있는 방이 나온다. 이들의 관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삶이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한 것만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참고로 나폴레옹은 이곳에 없다)

판테온은 원래 서기 507년 왕, 클로비스와 그의 부인이 묻히기 위한 교회로 지금의 자리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512년 성녀 즈네비에브(Sainte Geneviève)가 이곳에 묻힌다. 그녀는 훈족 아틸라의 공격을 기도의 힘으로 막아냈으며 그녀의 공덕으로 파리에 닥친 대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해 파리의 수호신으로 추앙된 것이다. 1744년에는 루이 15세가 자기가 만일 회복하면 이 즈네비에브 교회를 보수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회복하자 로마의 성 배드로 성당보다 더 뛰어나게 짓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재정 위기로 인해 공사는 늦춰졌고 결국 완성은 프랑스 혁명 발발 뒤인 1790년에 이뤄졌다. 

그러다 1791년 4월 2일, 입헌의회의 의장이었던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즉 미라보 백작이 사망하면서, 국민의회는이 건물을 위대한 프랑스인의 묘역으로 쓰도록 명하고, 이틀 뒤인 4월 4일 미라보를 처음으로 안장했다. 하지만 1792년 미라보가 왕과 비밀 협상을 체결했던 사실이 밝혀졌고, 1794년 11월 25일 미라보의 관은 결국 파헤쳐져 현재까지도 그의 무덤이 어디있는지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판테온은 그 후로 두 번은 다시 교회로 사용되었고 한 번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모임 장소로도 쓰였다. 그러다 1885년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과 함께 다시 세속적 사용이 시작되었다.  

1851년에는 물리학자 레온 푸코가 이곳에서 길이 67미터의 진자를 돔에서부터 내려뜨려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직접 보이기도 했다. 푸코의 진자가 잠깐 전시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파리국립기술공예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06~1922 년 사이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동상이 이곳에 전시되었다.

참고로, 판테온은 신전이라는 뜻을 가진다. 헛갈리기 쉬운 그리스의 파르테논(Parthenon)은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고, 로마의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을 모시는 의미였다. 그러니 그리스, 로마, 파리 각각 서로 다르다. 예컨대 구조만 봐도, 파르테논은 직사각형의 모양 안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방들이 벽으로 나눠져 있지만 로마 판테온은 돔 아래 완전한 원형 구조이고, 파리 판테온은 로마처럼 돔 구조이기는 하지만 건물 전체는 십자가형이다. 건설 자체부터 다른 이상과 목적을 배경으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파르테논은 지금 그냥 폐허(Ruins), 유적지로 남아있는데 반해 로마나 파리의 판테온은 지금도 국가 위인의 시신을 안치해 쓰이고 있다.(로마 판테온은 화가 라파엘로와 통일 국왕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의 시신이 있다) 이렇게 쓰이는 판테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포르투갈 리스본에도 하나 있다. 여기도 원래 교회로 쓰던 곳을 바꿔 근대 국가 포르투갈 성립에 공헌한 위인의 석관을 안치해 두었다. 그러나 민족주의에 깊이 뿌리내리다 보니 대항해 시대의 인물들까지 끌어다 놓아 시신이 없는 빈 관들도 있다. 

입장료: 7.50 유로
주소: Place du Panthéon 75005 Paris
웹사이트: pantheon.monuments-nationaux.fr
사진: 김승현 
십자가 모양의 넓은 복도의 중앙 홀(푸코의 진자가 있던 자리) 주변으로 네 곳에는 프랑스 혁명을 기리는 군상들이 있다. 밑에는 디드로의 흉상이 부조되어 있다.

십자가 모양의 넓은 복도의 중앙 홀(푸코의 진자가 있던 자리) 주변으로 네 곳에는 프랑스 혁명을 기리는 군상들이 있다. 프랑스 혁명의 영광을!이라는 메시지가 쓰여있다.
판테온 내부

판테온의 돔 천장을 올려다보면, 많은 사람의 얼굴이 웃으며 내려다 보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곳이 마리앙과 국민의회의 모습이다. 그 주변으로는 판테옹이 성당으로 쓰이던 시절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클로비스 왕, 즈네비에브 성녀, 샤를마뉴 왕 이야기들이 새겨진 조각과 그림이 서있다.

1792년 9월의 프랑스 공화국 의회멤버들에 둘러싸인 자유와 이성의 여신,마리앙.이 군상은 1921-1924년 사이에 제작된 것이다.마리앙. 마리앙은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으로, 왕정에 반대하고, 자유와 이성을 뜻한다. 실제로 1792년 9월 국민의회는 법률로 원뿔형의 모자를 쓴 채 창을 들고 선 여인상을 국가 상징으로 쓰기로 했다. 마리앙은 한때 프랑스 통화인 프랑에도 쓰였고, 지금도 공식 정부 문서에 쓰인다. 

미라보의 석상.전면이 마리앙을 위시한 의회를 나타낸 것인데, 미라보는 그 뒤에 있다. 미라보는 원채 웅변가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석상도 그의 웅변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판테온 지하 내부 모습. 간단히 말하면 위인들의 공동묘지다. —
볼테르의 석상과 관

빅토르 위고의 석관 입구

퀴리부부의 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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