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관 입구 모습 |
한국과 독일, 두 나라는 냉전과 분단의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나 독일이 먼저 통일한 덕분에 우리는 통일 이후의 세계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분단을 기록하는 방식도 그 중 하나다. 베를린의 후미진 곳을 참 힘들게 가야 찾을 수 있는 이 연합군 박물관에 가면, 승리자의 역사 해석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998년 6월 27일에 만들어졌다. 베를린에 공중 지원(Berlin Airlift)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냉전의 승리자가 된 미국, 영국, 프랑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일 통일을 기념하는 방식이었다. 박물관 근처에 서 있는 장벽을 뛰어넘는 실물 크기의 말들의 청동상도 조지 부시가 선물한 것을 보아도 냉전의 붕괴가 우파적으로 기념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안내서에도 이렇게 써있다. "여기 있는 전시물은 1945년부터 1994년 사이 베를린과 독일을 응원하는 서방 강대국들의 뜻을 한 데 모은 것들이다"
|
박물관 내부
|
내부를 들어가 보면, 동서 분단의 배경이 공산진영(소련과 동독의)의 일방적인 봉쇄정책의 결과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이후 갖혀버린 서베를린 사람을 돕기 위한 서방 강대국들의 착한 원조가 대단히 강조되어 있다. 대신에 미국의 세계관이 어떻게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침묵한다. 이렇게 이 박물관은 승자의 역사관, 승자가 결국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자신의 잘못을 적당히 덮어도 된다는 그런 공기가 지배한다.
그래서 이렇게 불편한 곳을 굳이 멀리 찾아 왔어야 했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입장료가 없으니까 하고 위안도 삼아보고, 종전 후 동서 베를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물을 보며 알 수 있는 것은 적지 않은 성과다. 스토리텔링 중심의, 소소한 많은 박물관이 모조품이나 사진만 전시하는 것에 비추면 이곳은 당시의 실제 물건 - 이제는 유적이 돼버린 - 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이 중 눈길을 끌고 가장 강조되어 전시되는 것은 석탄 주머니들이다. 석탄은 종전 직후 봉쇄된 서베를린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연료로 쓰였는 데 이를 실어 베를린에 떨어뜨린 주머니들이 매우 인상적인 것이다. 사실, 철도 도로 할 것 없이 하늘만 빼고 다 봉쇄되었던 베를린에 하나 남은 공중 수송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런 이야기들은 꾀나 흥미있다. 봉쇄된 베를린 하늘에 동독의 대공 사격이 떠오르겠지만, 그보다 대기에 노출된 석탄의 화학 작용이나 석탄 가루 등이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이곳에 전시된 석탄 주머니다. 미국은 석탄 주머니로 우리가 보통 더블백(Duffel Bag)이라고 하는 주머니를 썼고 영국은 마대자루를 썼다고 한다. 이 공중 수송으로 나른 석탄 총량, 1백5십8만 톤 대부분은 전기 생산에 쓰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시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1950년대 영미군의 첩보 작전에 쓰인 실제 터널의 일부다. 황금 작전이라 명명된 이 작전은 서베를린 남동 지역의 장벽 밑에 있는 터널에 소련 전화선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이 전화선에서 적의 대화를 엿듣는 일이었다. 영국의 이중스파이가 소련에 폭로하기 전까지 이 작전으로 약 1년여 동안 수만 건이나 되는 전화 대화를 녹음했다고 한다. 전시하는 터널은 실제 터널의 대략 10미터를 잘라 옮겨 놓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박물관에나 가야 얻을 수 있는 소소한 디테일이다.
박물관 밖에 전시되어 있는 "장벽이 무너지는 날" 청동상도 제법 눈길을 끈다. 미국인 작가 Verl Goodnight의 작품인데, 그 앞에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이 동판에 쓰여있다. "미국 국민이 독일 연방 공화국에게 드리는 선물. 전 미대통령 조지 부시가 1998년 7월 2일에 드림"
입장료: 무료
위치 보기: Clayallee 135 14195 Berlin
웹사이트: www.alliiertenmuseum.de
휴관일: 수
사진: 김승현
|
서방의 원조를 선전하는 포스터. 전쟁이 끝나고 동서로 나뉜 독일, 특히 베를린은 일종의 섬처럼 동독에 고립된 모양새가 되었다. 사실 이 고립으로 인해 연료, 식료품 등의 위기가 있어 서방의 원조에 의존했는데 그 중 심각했던 것이 연료였다. 연합군박물관은 베를린으로 날아들어간 석탄 총량이 1백5십8만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석탄은 미국의 대형 수송기로 날랐고 석탄은 서베를린 지역의 전기 생산에 들어갔으며 극히 일부가 민간 사용으로 쓰였다고 말한다. 사진 김승현. |
|
석탄주머니. 석탄을 비행기로 나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사진 김승현. |
|
석탄을 가져가는 베를린 사람들. 사진 김승현. |
|
비행기로 원조 물품을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항이 더 필요해졌다. 사진은 테겔Tegel 공항 공사 현장. 사진 김승현. |
|
당시 서방이 지원한 생필품들.사진 김승현. |
|
지원물품 리스트. 커피, 코코아, 초콜릿, 설탕, 베이컨, 쌀, 밀가루...등이 적혀있다. 사진 김승현. |
|
1945년 7월 알렉산더 광장의 사진. 스탈린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소련은 이미 5월에 베를린 점령을 완수 했고, 이때쯤 되면 도시와 사회 시스템이 소련과 독일 공산당 방식대로 조직되었다. 사진 김승현. |
|
1945년 5월. Lustgarten의 Altes 박물관 앞에서 행진하는 소련군대의 모습. 사진 김승현. |
|
1945년 당시 브란데버그토르가 파괴되어 있는 모습. 사진 김승현. |
|
1945년 4월 22일자 미군신문의 1면. 베를린에 빨갱이! 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승현. |
|
1937년 독일국가사회주의당의 포스터. "볼세비즘이라는 전염볌에 물든 공산 세계" . 좌파 사상은 나치에게도 연합군에게도 환영 받지 못했다. 사진 김승현. |
|
1943년 미국의 포스터. "UN이 자유를 위해 싸우다" 라고 써있다. 사진 김승현. |
|
1944년 미국과 프랑스 공동 포스터. 사진 김승현. |
|
1943년 미국의 포스터. "전쟁 공채를 삽시다" 하고 써있다.사진 김승현. |
|
박물관의 다른 전시관의 내부. 이 전시관은 동서 분열 이후의 모습을 전시한다.사진 김승현. |
|
전쟁이 끝나고 베를린은 승전국 네 나라가 점령했다. 철의 장막이 베를린 한 가운데를 지나게 됐다. 미국과 영국 정보국은 "스톱워치 작전/ 황금 작전"을 1954-55년 사이에 벌였는데, 서베를린 남동지역의 미군 레이다 기지에서 시작했다. 이곳의 대략 450미터 길이의 터널에는 동독 주둔 소련군이 사용하는 세 개의 지하 전화선으로 연결되었다. 거의 1년 동안 전화선을 통해 4만 개 이상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이중스파이 조지 블레이크가 소비에트에게 이 작전을 폭로해버리면서 끝났다. 1956년 이 터널이 발견되고 엄청난 언론이 관심을 보였지만 곧 잊혀졌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실제 터널의 일부를 전시해놓은 것이다. 사진 김승현. |
|
스파이 터널의 위치. Rudow는 베를린 남부지역, 서베를린 지역에 포함되어있었다, 빨간선은 서베를린을 감싸는 장벽이 지나는 곳이다. 사진 김승현. |
|
장벽 붕괴 후 일부를 전시해 놓았다. 뒤쪽으로 동베를린 진영이 되는데, 감시탑이 있다.사진 김승현. |
|
"장벽이 무너지는 날" 미국인 작가 Verl Goodnight의 작품. 이 작품을 알리는 설명이 동판에 이렇게 쓰여있다. "미국 국민이 독일 연방 공화국에게 드리는 선물. 전 미대통령 조지 부시가 1998년 7월 2일에 드림" 사진 김승현.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