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안네 프랑크 센터: 독일 나치의 인종 청소 과정과 안네 프랑크의 성장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안네프랑크센터 정문.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즘의 유태인 학살 피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중 한 명이 이 어린 소녀, 안네 프랑크일 것이다.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안네는 독실한 유대교 가족에서 자랐다. 1933년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뒤부터 유대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해져, 1938년 안네 프랑크 일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나치당 집권 하의 독일은 무장을 강화해 1940년 네덜란드로 진격했다. 


안네프랑크센터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

당시 네덜란드에도 나치당이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 협력했다. 초기 분위기는 어느 정도 평화로운 듯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내 저항이 일어나고 전쟁 상황에 따라 네덜란드 내부 분위기는 갈수록 억압적이 되어갔다. 인종차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덜란드 지배정당이 된 나치당이 독일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지하로 숨어 지내게 됐는데, 안네 프랑크 일가도 그런 유대인 가족 중 하나였다. 그리고 1945년 3월 안내 프랑크 가족은 은신처가 발각되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얼마 뒤 안네는 세상을 떠났다. 1945년 3월 16세의 나이였다.

안네가 쓴 일기는 그가 13세 되던 해 선물로 받은 것인데, 안네는 여기에 망명과 은신 생활 중 벌어지는 이야기를 적었다.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고 난 뒤부터는 일기를 쓸 수 없었다. 

이곳 안네 프랑크 센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내 프랑크의 집과 독일 내 파트너 조직이다. 베를린 시내에 있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오래된 건물에 단 한 층만을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안네 프랑크와, 히틀러와 나치당의 전쟁 준비와 유대인 학살이 시간 순으로 전시되어 있어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현대의 우리에게 안네 프랑크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는 동영상들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어 설명이 조금도 없어 영어라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입장료: 5유로
주소: Rosenthaler Straße 39.10178 Berlin

웹사이트: www.annefrank.de
휴관일: 월
사진: 김승현

안내프랭크센터에서 전시하는 소책자. 센터 소개에 따르면, “1930년과 1933년 사이 나찌당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소책자. 여기의 25점프로그램에 따라 유대인들은 시민이 아니라 독일에서 사는 손님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모든 공무에서 제외되었고 위기 상황이라도 닥치면 거주자로서 지원받지 못하고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1929년 8월 뉘렘버그(Nuremberg)에서 열린 베를린폭풍부대의 퍼레이드 장면
1931년 10월 Brunswick에서 찍은 사진 한 소년이 SA(폭풍부대)의 복장을 하고 히틀러 옆에 서있다.
1931년 안네 프랑크 사진. 그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 6일 베를린 Lustgarten에서 열린 국가사회주의당에 반대하는 “iron front”의 집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1933년 결국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다.
1937년 7월에 찍은 사진, 안네와 그의 친구들. 안네는 왼쪽에서 둘째. 

Rhileland 독일 점령군이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고 있는 모습. 1936년 3월 7일

1937년 경, 소년소녀 나치당원 선전 포스터
1936년 3월 16일 히틀러가 공항에서부터 베를린 시내를 지날 때 모습. 환호하는 어린 여성들은 나찌청년 소녀단원들로 오스트리아 여성들이다. 
1938년 암스테르담의 한 공원에서 토끼를 안고 있는 안네의 모습
1938년 누렘버그(Nuremberg) 집회의 열광적 참가자들 모습
1939년 9월 1일 오전 폴란드를 침공하는 독일 전차부대의 모습
1941년 Merwedeplein 집의 책상에 앉은 안네의 모습

1943년 5월 26일 암스테르담. Westerbork 이동 캠프로 이송을 대기하는 유대인 아이들이 부모를 기다리는 모습 

1943년 5월 26일 암스테르담 폭격이 있었다. 나찌와 네덜란드 나찌 동조자들은 유대인 남자, 여자, 아이들 3만명 을 집에서 끌어내어 Westerbork 이동 캠프까지 기차로 보냈다. 잡혀간 유대인들은 여기서 다시 마지막 처형 캠프가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이 사진은 끌려가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몰래 찍은 것이다.
강제수용소의 유대인 여성들. 여성들의 머리가 다 깍여 있다. 

안네프랑크가 생일날 선물 받은 일기장. 이 일기장이 우리가 아는 '안네의 일기'다 
박물관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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