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을 읽을 시간. 맑스-엥겔스 포럼 (Marx Engels Forum Berlin)


베를린 시내로 들어가면, 유명하기도 하고 왠지 몇 백 년은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오랜 건물들이 커다란 대로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띤다. 박물관이거나 주요 관공서나 금융기관 건물들이 나란히 선 채 스퓨레 강쪽으로 이어진다.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길이다. 전승기념탑에서 출발해 브란덴브루크토르(Brandenburger Tor) 방향으로 난 길을 더 가다보면 왼편에 훔볼트 대학도 보이고 박물관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슈프레(Spree) 강이 있다. (파리의 개선문이 그렇듯이 전승기념탑에서 뻗어나간 길은 베를린의 여기저기로 안내한다)

그 슈프레 강 너머 오른 편을 바로보면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 하나가 보이는데, 그 공원 안에 사이 좋아 보이는 두 할아버지의 청동상이 있고 그 주변엔 조각을 포함한 설치물들과 의자 몇 개가 있다. 두 할아버지는 혁명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다. 공원 이름은 마르크스-엥겔스 포럼(Marx-Engels Forum)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조각과 설치물에)은 독일의 다른 혁명가들이다.

이 공원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만들어졌다. 1986년 동독 정부가 이 곳에 공원을 만들어 공원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헌정하기로 해 동상도 만들고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얼마 뒤 동독은 붕괴했고 덕분에 이 공원도 해체될 뻔했다. 이른바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가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누군가는 ‘마르크스-엥겔스’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공원 이름과 동상은 살아남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물신화"의 여운을 지울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상관 없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도, 목이 휘도록 올려다 봐야 하는 마르크스의 조각이 붉은 광장 근처 공원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베를린에는 칼 마르크스, 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들이 많다. (물론 쫓겨나고 저주받던 카이저나 러시아 짜르의 이름을 딴 곳도 있다.) 이들은 모두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주의라고 하는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의 고귀한 이상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정치에 비판적이거나 공공 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쉽게 좌파로 몰리고 때로는 국가 기관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미리 재단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하는 한국, 그리고 그런 나라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수퍼마켓 이름까지 칼마르크스라는 이름을 단 베를린을 보면 뭐랄까, 숨쉬는 공기마져 우리와 다를 것 같다. 

그러나 이 뒤에는 보다 복잡한 심경이 함께 자리한다.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그들이 내건 슬로건들이 박제되어 야외 박물관에 전시 되고 있다는 느낌말이다. 옛 동독 시절, 노동자 국가라는 프로파간다를 위해 한참을 울궈먹다 내버려진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은 확실히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말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논박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를 신뢰하거나 불신하게 된다. 국민을 염탐하고 수사기관을 동원해 비판에 입을 막는 정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한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지 못하고 생산 과정에서 소외된 나라가 사회주의라고 떠들어댄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나? 

이런 프로파간다는 모두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려는 음흉한 목적들과 연결된다. 죽은 이들은 이 목적에 의해 때로는 부관참시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성시된다. 실제로 그들의 말과 행동은 어땠는지는 보지도 않고 말이다. 아마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처럼 이런 목적에 자주 인용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극과 극을 오가면서. 

공원에 앉아 사람 좋아 보이는 청동상의 두 할아버지를 보며, 그들이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하고 궁금하다면 저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읽어야한다. 

글, 사진: 김승현





Post a Comment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