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네프 Pont Neuf: 영화 말고 역사 이야기

퐁네프.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 있는 곳이 시테 섬이고, 배가 보이는 위쪽에 다리에서 튀어 나와 있는 곳에 앙리 4세의 동상이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철거되었다, 왕정 복고 기간에 다시 돌아왔다.

퐁네프(Pont Neuf), 하면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프랑스 영화를 봤지만, 프랑스 영화는 뭔가 어렵다는 추억만을 갖고 잊혀졌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퐁네프와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퐁: 다리, 네프: 새로운, 이렇게 해서 새 다리라는 뜻이다. 중세 파리의 중심 지역이었던, 세느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시테 섬(Île de la Cité)을 잇던 다리가 너무 오래 되었으니 새로 짓자는 요청으로 이 다리는 만들어졌다. 이름도 그에 맞게 ‘새 다리’ 하고 지은 것이다. (그림 1569년 파리의 모습 참조)

다리의 특징으로는 당시 다리를 지으면 다리 위에 집들도 함께 짓기마련인데, 퐁네프에는 집을 짓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많은 아치들의 계속 연결된 형식을 띠고 있다.

다리 건설의 역사를 보면,앙리 2세 때에 요청했지만 비용 부담으로 1578년 앙리 3세 때부터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톨로메오 대학살(1572년) 이후 오랜 갈등 끝에 일어난 종교 전쟁(위그노 전쟁)으로 인해 공사는 중단 되었다가 1599년에야 다시 시작했다.  그래서 다리의 주변을 잘 살펴보면 ‘위대한 왕 앙리 4세에 건설하다’ 하고 써있고, 저만치 보면 그 앙리 4세가 거대한 청동 동상의 말을 타고 뚝 하니 서있다.

앙리 4세는, 소위 ‘위그노 전쟁’으로 알려진 오랜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앙리 3세가 죽고 난 뒤 왕이 된 자다. 동시에 그는 부르봉 왕가의 첫째 왕이기도 하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프랑스 영화 <여왕 마고>의 마고다.(영화에서 여왕 마고는 프랑스의 종교적 평화를 가져온 낭트 칙령을 발효한 앙리 4세의 조력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퐁네프에 그의 동상을 만들도록 한 사람은 그의 첫째 부인이 아니라 둘째 부인이자, 루이 13세의 어머니,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여자 마리였다.

마리 드 메디치는 많은 아이를 낳았고 그 가계가 이어져 프랑스 혁명의 원흉이 되었다. 이 왕가에 대한 분노가 어찌나 컸던지 루이 16세는 민중들에게 처형당했다.그리고 이 앙리 4세의 청동 동상은 역시 성난 프랑스 노동계급이 무너뜨려버렸다. 다른 많은 왕과 신들의 동상들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 동상이 다시 여기 서게 된 것은 다름아닌 부르봉 왕정 복고때문이다.1818년,.복고한 부르봉 왕정은 가장 먼저 앙리 4세의 동상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혁명이 나면, 이것도 다시 무너뜨려야 할까???

참고로 이 다리 아래에는 자크 데 모레(Jaqgues de Molay)의 죽음을 추모하는 동판이 함께 놓여있다. 자크 데 모레는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기사로 왕 필립에 의해 1314년에 여기서 (그때는 퐁네프 다리가 있기 전이었다) 처형당했다. 템플기사단 또는 성전기사단으로 알려진 이들은 십자군 전쟁 당시의 기사단으로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전쟁에 참여해 부를 쌓고 심지어 자치 지역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을 우려하던 교황과 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끝났다. 직접 찾아보려고 했지만, 다리 아래쪽 중간 어딘 가에 있다고 하는데 못찾았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한 장면. 영화에 나오는 이 다리는 실제 다리가 아니라 촬영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것이다. 


"위대한 왕 앙리 4세가 만들다" 하고 써있다

앙리 4세의 동상. 이 동상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딸이자 앙리 4세의 둘째 부인 마리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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